“잠자코 추이를 지켜 보는 게 어때? 일단 곪기 시작한 상처는 중간에 약을 바른다고 나아지지 않거든. 완전히 곪아서 터지게 만들던가 아니면 깨끗이 도려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모두 다치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면 더 나빠지는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거야. 상처가 곪아서 터질 때까지 방치하는 동안 사람들이 받아야 할 고통은 어떻게 하라고? 또 도려낼 때의 통증은 또 얼마나 심하겠어?”

몇 해 전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동료와 나누었던 대화다. 시간이 꽤 지났어도 토시 하나까지 또렷하게 기억 나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입에서 나온 이른바 ‘상처론’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이다. 당시 우리 부서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암초에 부딪혀 표류 중이었다. 문제점이 비교적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 얽혀있는 다양한 이해관계, 정확히 말하자면 윗사람들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섣불리 해결하지 못해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중간관리자였던 우리 둘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토론을 벌였으나 각자 극명한 견해의 차이만 확인할 뿐이었다. 즉시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려 이해 당사자들간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나의 의견에 그는 낭만적인 생각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사태를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 하다며 그를 비판했다.

결과가 어찌 됐을까? 그의 예측이 맞았고 결국 써야 할 시간을 다 쓰고 되돌이표를 거듭한 끝에 프로젝트 방향이 수정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회사와 구성원들에게 최선이라는 명분으로 문제를 공론화시켰던 나에게 되돌아 온 것은 팀장보직 박탈이었다.

눈 앞에 상처가 심각해 보여도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일까? 정말 곪아 터지도록 놓아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명확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처한 환경 또한 천차만별이므로 섣불리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바로 처방에 돌입할 수 없는 경우를 흔히 만나게 된다. 당장의 고통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 대차대조표를 따져 보았을 때 고통의 총합이 적은, 경제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결과 못지 않게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후일을 도모하기 보다는 주어진 순간에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사람들이라면 그 지나친 사명감과 과도한 책임감이 스스로 발목을 붙잡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의 열정이라 해도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달려들 가능성이 있다면 한 걸음 쉬어 가는 것이 현명하다. 적어도 다양한 조직에서 무수히 깨져봤던 나의 경험상은 그렇다. 몸담고 있는 조직을 향한 헌신이 구성원의 의무이지만 조직의 열매를 공유하지 못한다면 공허한 일이다. “네 안에 나 있다” 읊조리며 쓸쓸히 퇴장하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개인이 지닌 열정도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가진 재능, 열정, 자원도 오래오래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긴 호흡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궁극적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구별할 힘을 주기도 한다. 가끔은 몰두하고 있는 일에서 빠져 나와 문제를 객관화시켜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직장생활, 마치 두 발 자전거를 타듯 앞만 보고 달려 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잠시라도 멈추면 쓰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쉴 새 없이 패달을 지치면서 말이다.

자신을 믿고, 자전거에 몸을 맡기자. 그동안 당신의 열정이 헛되지 않았다면 얼마간은 흔들리지 않고 넉넉하게 달려 줄 것이다.

<자기계발 컨텐츠 스페셜리스트>. <비굴클럽>, <대한민국 20대 회사사용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