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씨는 앉아만 있어도 글이 저절로 써질 것 같은 풍광이 아름다운 집을 두고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작업실을 얻었다. 이윤즉 살림살이가 눈에 보이면 쓸고 닦고 정리하고 싶어 일에 몰두할 수가 없다는 것. 타고난 살림꾼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살림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었던 다큐멘터리 작가 박지현씨는 결혼과 동시에 꿈꾸던 시골행을 실행하더니 딱 10년 만에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살림 노하우 책을 출간했다. 앞만 보고 살아야 했던 도시 생활과 달리 옆도 둘러보고 뒤도 돌아볼 만큼의 여유가 생긴 시골 생활은 신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날이면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일기장에 미주알고주알 적어 넣었던 것을 한데 묶어보니 감성이 묻어나는 살림 비법서가 되었던 것. 초록을 일으키는 봄비가,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이, 다른 나무를 배려해 가지를 비껴 뻗은 나무가 모두 영감이 되어 그녀를 살림꾼으로 키웠다. 살림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무궁무진한 방법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인지 이제야 깨달았다는 그녀, 자연과 공존하는 살림을 통해 삶의 철학까지 깨우친 담양댁 박지현의 살림살이 구경이다.

그녀의 집에는 요리조리 둘러봐도 마감재부터 집 안 곳곳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테리어 소품까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아이템은 한 점도 없다. 문짝부터 붙박이장, 음향 기기는 물론 조명까지 집 안의 가구와 웬만한 물건들은 나무로 되어 있는데, 이곳에 입주하기 전에 직접 디자인한 것을 가구 장인에게 의뢰해 만든 것들이다. 그녀가 다른 살림꾼과 차별되는 점은 어떤 것을 디자인하건 훗날까지 생각한다는 것. 안방의 침대 역시 한 장인에게 맞춤 제작한 것인데, 싫증이 날 경우를 대비해 다시 조립하면 싱글 침대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박지현씨는 집 안에 소품 하나를 들이더라도 가능하면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응접실과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 쪽 천장의 조명은 담양의 특산품인 대나무를 활용해 만들었다. 원하는 디자인을 직접 그려 대나무 가공하는 곳에 맡겨 제작비는 많이 들지 않았지만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멋지다고 칭찬할 만큼 인기가 좋다. 웃자란 뽕나무 가지를 이용해 멋스러운 옷걸이를 만들고, 계절에 어울리는 꽃나무와 산열매를 꺾어 주요 공간에 비치해 집 안 분위기를 변화시킨다. 또 응접실에 놓인 탁자는 오래된 가옥의 문짝을 뜯어서 만든 고재 가구이며, 몇몇 소품은 고물상을 보물 찾기 하듯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이다.

남다른 안목 역시 그녀가 타고난 살림꾼임을 증명한다. 아이들의 낙서 한 조각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다. 아이가 조각 천에 그린 그림을 커튼 만드는 데 활용하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일일이 표구 작업해 빈 벽을 채우니 갤러리가 따로 없다. 실제로 그녀의 집 벽면에는 유명 작가의 작품과 아이들의 작품이 함께 걸려 있는데, 어느 게 아이들이 그린 것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또 재활용 털실로 코바늘 뜨기 한 니트 받침에 아교를 발라 시계를 만들거나, 천의 구멍 난 부분에 코바늘 뜨기한 문양을 덧대어 그럴싸한 커튼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담양댁은 처녀도 아니면서 해마다 봄이면 괜히 싱숭생숭해 집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 냉장고 정리를 한답시고 이것저것 늘어놓더니 불현듯 바구니 하나 들고 들판으로 나선다. 이 밭 저밭 바람처럼 떠돌다가 가득 찬 바구니를 들여다보고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는다. 4월과 5월 산천은 물오른 나물 천지다. 들에는 쑥과 돌나물, 머위, 봄동이 산에는 취와 산두릅, 나무 그늘 아래에는 고사리와 고비 등 이 한철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곳으로 막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잡초와 푸성귀를 구분하지 못해 잡초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집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뽑고 또 뽑았는데, 이제는 아무짝에 쓸모 없는 풀이 아니라 가족을 건강하게 해주는 밥상의 약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박지현씨가 봄나물을 즐기는 방법은 3단계다.

첫 번째는 실컷 뜯어 먹기. 연한 잎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초봄에나 가능한 일로, 씁쓸한 맛 말고 무슨 맛이 더 있을까 싶지만 향기 때문인지 풀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게 ‘이게 봄 맛이구나’ 생각하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다음 단계는 나물로 무쳐 먹거나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섞은 소스와 곁들여 샐러드로 먹는 것이다. 들에서 잔뜩 뜯어 온 푸릇푸릇한 나물, 밭둑에 핀 제비꽃, 집 앞 언덕배기에 핀 갓꽃과 장독대 옆에 핀 민들레 몇 잎 넣었더니 레스토랑에서 파는 샐러드처럼 생김새도 그럴듯하다. 마지막 단계는 봄맛이 그리운 날을 대비해 갈무리한다. 1년 먹을 거리를 저축할 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간장과 된장을 이용해 장아찌로 담그는 것. 머위와 두릅으로는 간장장아찌를, 감잎으로는 된장장아찌를 담가 냉장고에 보관해 놓고 별미처럼 이따금씩 상에 올린다. 또 다른 저장법은 끓는 물에 데쳐 말리는 것으로 쑥과 취, 고사리와 고비, 그리고 참죽나물 등이 적합하다. 잘 말린 것을 투명한 비닐봉지에 잘 밀봉해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다가 이를 탐내는 이웃이 있으면 선심 쓰듯 나눠주는 것 또한 그녀의 특기 중 하나이다.